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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1년부터 2011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9년 10월7일 충북 영동 노근리 학살 사건 현장에 진상조사단 관계자들이 와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1년 1월13일 노근리 학살사건, 미국이 “유감”이라 했지만…

한국전쟁 초기이던 1950년 7월26일. 북한의 공세에 밀려 피난길에 오른 민간인들이 미군에 학살당했습니다. 충북 영동군 노근리 인근에 있는 경부선 철로와 쌍굴에서였습니다. 피난민들을 인솔하던 미군은 피난민들이 건너던 철교를 폭파했습니다. 쌍굴로 뛰어내린 피난민들에겐 사격을 가했습니다. 쌍굴 앞 야산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피난민들이 쌍굴을 빠져나오면 총을 겨눴습니다. 29일까지 4일 동안 이어진 공격으로 피해사실이 접수된 희생자만 226명(사망 150명, 실종 13명, 부상 63명)에 달합니다. 우리는 이 역사를 ‘노근리 학살사건’이라 기억합니다.

2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미국이 노근리 학살사건에 유감을 표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한국과 미국은 1999년 10월부터 공동조사를 벌였습니다. 양국은 “절박한 한국전쟁 초기에 수세적인 전투상황 하에서 강요에 의해 철수 중이던 미군이 1950년 7월 마지막 주 노근리 주변에서 수 미상의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혔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을 ‘미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 사건’이라 공식 규정한 것입니다.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인들을 대표해 노근리에서 한국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비록 노근리에서 발생한 사건의 경과를 정확히 가려낼 수 없었으나 한국과 미국은 공동 발표문을 통해 인원을 확인할 수 없는 무고한 한국인 피난민들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근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국인들에게 위로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경향신문 2001년 1월13일 보도
공동조사는 사건의 실체를 부인하던 미국이 민간인 살상을 ‘공식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성과로 평가됩니다. 다만 학살 명령을 내린 주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양국의 입장이 대립되거나 확인이 불가능한 사항은 양측 주장을 함께 담았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미 제5공군 참모장교 터너 C 로저스 대령의 메모가 대표적입니다. 로저스 대령의 메모에는 미 육군이 진지로 접근하는 민간인들을 항공기로 기총 공격할 것을 요청했고, 미 공군이 이에 응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다만 공동 발표문엔 미국 측의 요청에 따라 “그런 메모를 한 기억이 없다”는 로저스 대령의 진술이 함께 적혔습니다.

사격 명령에 대해서도 명확히 결론짓지 못했습니다. “피난민에 대한 사격명령이 반드시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일부 참전장병의 증언 내용과 목격 증언 기록만 담았을 뿐입니다. 희생자 수도 248명이라는 한국 측 입장과 ‘그보다는 적을 것’이라는 미국 측 참전장병의 증언이 함께 담겼습니다.

피해자와 유족들은 “미군의 학살 책임을 분명히 하지 않고 피해자 보상 부분도 전혀 언급하지 않아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습니다. 당시 노근리 주민들은 “피해자와 한국 국민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개별적인 보상에 나서야 할 미국이 보상에 대한 언급 없이 ‘유감’ 표명에 그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겠다고도 했습니다.

노근리 사건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건 1999년 9월 미 AP통신의 보도 이후였습니다. 피해자들은 이전부터 사건을 알리고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1960년 유족들이 미군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제기했다 기각됐습니다. 노근리양민학살대책위원회 위원장이었던 고 정은용씨는 1994년 4월 실록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펴냈습니다. 그해 7월 대책위는 한국·미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공식 탄원하기도 했습니다.

노근리 사건은 지난해로 70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해 노근리평화공원에선 특별한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참전 미군의 유족과 피해자 유족이 만났습니다. 이들은 미국 정부에 진정한 사과와 합리적인 배상을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탁지영 기자 g0g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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