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 사장의 실종, 반년 후 드러난 진실은... [오래 전 '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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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감설희
작성일20-08-21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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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990년 8월21일 카바레 사장의 실종, 반년 후 드러난 진실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유흥가 대부’로 불리던 남성이 갑자기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실종 8일째까지 경찰은 그가 탔던 차량만 확보했을 뿐 그의 행방에 대해선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수사물 같은 이 사건, 결국 어떻게 끝났을까요.

“유흥가의 대부로 알려진 카바레 사장이 현금 4700만원을 갖고 나갔다 승용차만 호수에 빠진 채 발견되고 8일 동안 실종,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동대문구 A카바레 대표 오모씨는 지난 10일 현금 4700만원을 소지, 혼자 볼보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간 뒤 승용차는 14일 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호명리 청평호에 빠진 채 발견됐으나 오씨는 8일째 실종 상태다.” (1990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15면)
오씨는 실종 직전인 10일 오전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가족들에게는 “강릉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직접 볼보 승용차를 끌고 나갔다고 합니다. 11일 밤과 13일 오전에는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도 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안부전화를 한 다음날인 14일, 오씨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날 오후 경찰은 경기 가평의 청평호수 주변 식당 주인으로부터 ‘승용차가 도로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채 추락했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수색 끝에 빈 차량만 건져냈습니다. 이 차량을 타고 있었을 오씨는 찾지 못한 겁니다.
당시 경찰은 크게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직 폭력배와의 갈등이 심각해져 납치당했을 수 있고, 부도를 맞아 실종 자작극을 벌였을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이날 보도를 보면, 오씨는 실종 직전 특정 폭력배 집단 소속의 보디가드 몇명을 해고했는데, 이 문제를 두고 심한 갈등을 겪어왔다고 합니다. 경찰은 폭력배들이 오씨에게 “조직 재건을 위한 사업자금을 요구하다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당시 오씨가 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B은행으로부터 빌린 13억원이 부도 처리된 점을 생각하면 ‘자작극’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오씨 실종 사건은 진척의 기미가 없었고, 그렇게 잊혀지는듯 했습니다. 그런데 약 반년이 지난 후 신문과 방송에 오씨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바레 입구에서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알고보니 오씨는 ‘교통사고 위장 자작극’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볼보 자동차를 직접 청평호수에 추락시킨 후 부산과 울산, 양산, 김제 등에서 은신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부터는 대담하게 서울로 돌아와 자신이 운영하던 카바레를 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겁니다.
당시 ‘유흥가의 대부’로 통했던 오씨. 그는 한때 한국전력에서 일했는데, 퇴직금과 친구들의 돈으로 비밀요정을 인수하며 승승장구했고, 폭력배들과도 관계를 맺어왔다고 합니다. 서초동의 대형 룸살롱, 이태원의 디스코 클럽 등의 경영에 참여했고, 보도에 등장하는 동대문구의 카바레는 24억원에 인수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종합일간지와 방송사가 일제히 그의 실종을 다룰 정도였으니 ‘거물’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사건 한 토막이었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 장도리
[경향신문]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90년 8월21일 카바레 사장의 실종, 반년 후 드러난 진실
30년 전 오늘 경향신문 사회면에는 ‘유흥가 대부’로 불리던 남성이 갑자기 사라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실종 8일째까지 경찰은 그가 탔던 차량만 확보했을 뿐 그의 행방에 대해선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마치 수사물 같은 이 사건, 결국 어떻게 끝났을까요.

“유흥가의 대부로 알려진 카바레 사장이 현금 4700만원을 갖고 나갔다 승용차만 호수에 빠진 채 발견되고 8일 동안 실종,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동대문구 A카바레 대표 오모씨는 지난 10일 현금 4700만원을 소지, 혼자 볼보 승용차를 몰고 집을 나간 뒤 승용차는 14일 밤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호명리 청평호에 빠진 채 발견됐으나 오씨는 8일째 실종 상태다.” (1990년 8월21일자 경향신문 15면)
오씨는 실종 직전인 10일 오전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한 뒤 가족들에게는 “강릉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직접 볼보 승용차를 끌고 나갔다고 합니다. 11일 밤과 13일 오전에는 가족들에게 안부전화도 했습니다.
그런데 두번째 안부전화를 한 다음날인 14일, 오씨는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날 오후 경찰은 경기 가평의 청평호수 주변 식당 주인으로부터 ‘승용차가 도로에서 헤드라이트를 켠 채 추락했다’는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수색 끝에 빈 차량만 건져냈습니다. 이 차량을 타고 있었을 오씨는 찾지 못한 겁니다.
당시 경찰은 크게 두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조직 폭력배와의 갈등이 심각해져 납치당했을 수 있고, 부도를 맞아 실종 자작극을 벌였을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이날 보도를 보면, 오씨는 실종 직전 특정 폭력배 집단 소속의 보디가드 몇명을 해고했는데, 이 문제를 두고 심한 갈등을 겪어왔다고 합니다. 경찰은 폭력배들이 오씨에게 “조직 재건을 위한 사업자금을 요구하다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그를 납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당시 오씨가 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B은행으로부터 빌린 13억원이 부도 처리된 점을 생각하면 ‘자작극’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오씨 실종 사건은 진척의 기미가 없었고, 그렇게 잊혀지는듯 했습니다. 그런데 약 반년이 지난 후 신문과 방송에 오씨의 이야기가 다시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바레 입구에서 경찰에 검거됐습니다.
알고보니 오씨는 ‘교통사고 위장 자작극’을 펼친 것이었습니다. 그는 볼보 자동차를 직접 청평호수에 추락시킨 후 부산과 울산, 양산, 김제 등에서 은신을 해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해 말부터는 대담하게 서울로 돌아와 자신이 운영하던 카바레를 오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 경찰에 덜미가 잡힌 겁니다.
당시 ‘유흥가의 대부’로 통했던 오씨. 그는 한때 한국전력에서 일했는데, 퇴직금과 친구들의 돈으로 비밀요정을 인수하며 승승장구했고, 폭력배들과도 관계를 맺어왔다고 합니다. 서초동의 대형 룸살롱, 이태원의 디스코 클럽 등의 경영에 참여했고, 보도에 등장하는 동대문구의 카바레는 24억원에 인수한 것이었다고 하네요. 종합일간지와 방송사가 일제히 그의 실종을 다룰 정도였으니 ‘거물’이긴 했던 모양입니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의 사회 분위기를 짐작케 하는 사건 한 토막이었습니다.
송윤경 기자 kyung@kyunghyang.com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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