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업계 내부에서 정부를 향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철강 관세 분쟁 합의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미온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철강업계 사정을 외면한 채 정부가 탄소중립 중간 목표치를 상향했다는 비판이 팽배한 시점이어서 더욱 날선 반응이다.3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EU의 합의가 나온 직후 산업부 국장급 인력을 워싱턴DC에 급파했다. 지난 1일에는 주영준 산업부 산업정책실장 주재로 철강업계와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이번 미국과 EU의 합의로 유럽산 철강의 미국 수출이 증가할 경우 국내 철강제품의 미국 수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미국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작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철강 413만톤을 미국에 수출했다. 캐나다(1095만톤)·브라질(765만톤)·멕시코(670만톤) 등에 이어 4위 규모다. EU 국가 중에서는 독일(5위·186만톤), 네덜란드(10위·89만톤) 등이 10위권에 포함된다. 국가별로 보면 한국 수출량이 주요 유럽국가를 앞서지만, 이번 합의로 유럽산 철강제품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한국 수출량이 위축될 수 있다고 업계는 입을 모았다. 미국과 EU의 합의와 관련해 구체적 품목 등이 나오지 않아 예상 피해 규모를 수치화할 순 없지만, 품목에 따라 여파가 상당한 경우도 나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8년 3월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명분으로 무역확장법 232조를 적용했다. 수입하는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10%의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미국은 수출국들에 관세를 피하려면 '쿼터제'를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EU·중국·영국·일본 등은 응하지 않았고, 우리 정부는 이에 응해 고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다.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번 합의로 EU는 매년 330만톤의 철강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한국은 당시 쿼터제를 수용해 2015~2017년 철강 완제품 평균 물량의 70%까지만 수출이 가능하다. EU의 무관세 수출량이 최대 330만톤 규모로 추산되는 만큼 한국 철강제품의 경쟁력 하락이 예상된다. 철강업계에서는 정부의 대응이 늦다고 지적했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기업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정부의 영역"이라며 "미국의 보복관세 철폐 논의가 상반기부터 이어져 왔는데, 합의 소식이 난 직후 인력을 급파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관의 미국행이 추진된다고 전해지는데 이 역시 반도체 사태 해결이 주된 목적이고, 철강 수입규제 완화는 곁가지다"고 우려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합의를 위해 미국과 EU의 실무진들이 접촉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수개월 전부터 대응 수위를 높여왔다"면서 "EU 합의안과 유사한 대응조치를 촉구 중이다"고 답변했다. 또 "미국이 EU와 철강 관세를 합의하면서 같은 처지였던 국가들의 완화조치 요구도 빗발칠 전망"이라면서 "이 같은 상황과 철강업계 요구 등을 반영해 적절히 대응할 계획"이라 답했다.정부를 향한 철강업계의 불만은 미국·EU의 합의 이전부터 시작됐다. 최근 정부는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확정했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 2050년에는 '제로(0)'화 시킨다는 게 정부의 방안이다. 재계는 2030년 40% 감축 목표가 너무 과도하다는 입장이었지만 반영되지 않았다. 높은 목표치는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업계에 직격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12년 12월 제시된 목표가 26.3%고, 올 8월 언급된 목표치가 35%다"면서 "정부가 단기간 내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고, 업계와 재계가 우려를 표명했음에도 사실상 일방적으로 확정·발표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점을 제시하면 탄소중립에 반기를 든 것처럼 비춰지는 상황이라 속만 태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국 철강업계 탄소중립 노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며 "수소환원제철이 아무리 빨라도 2040년경 도입되는데, 정부가 현실성 있는 대안이나 별다른 지원책을 제시하지 않고 기업을 과도하게 압박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