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머슴을 섬긴 주인…조덕삼과 이자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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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여주
작성일20-05-0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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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년 된 ㄱ자형 한옥 금산교회
장로 투표 머슴에게 지고도 겸손
학비 전액 지원…목사로 모셔
신분·나이·지역 뛰어넘은 큰 인물
고두현 논설위원·시인
‘ㄱ’자 모양의 한옥 예배당인 전북 김제 금산교회. 담장 곁의 나무 종탑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어른 키 세 배 정도의 종탑 지붕에 십자가가 서 있고, 마당 안쪽으로 기와를 얹은 한옥 교회가 나지막하게 앉아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반질반질한 장마루 위로 남녀가 나눠 앉았던 공간이 보인다. 대들보와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에는 1908년 상량식 때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바로 옆에는 1988년에 지은 2층 규모의 현대식 교회가 붙어 있다. 벽돌로 지은 신식 교회의 십자가와 112년 된 종탑의 십자가가 한옥 예배당을 보듬고 있는 모습이다. 요즘은 코로나 여파로 평일에 한옥 문을 닫고 가끔 주일학교 등으로만 활용한다.
장관 자리 거부한 '3선 총회장'
이곳은 원래 ‘김제 갑부’ 조덕삼(趙德三·1867~1919)의 과수원 땅이었다. 조덕삼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중국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아버지는 김제에서 금광업으로 큰 부자가 됐다. 그 덕분에 김제평야의 비옥한 땅을 많이 가졌다. 조덕삼의 집은 김제와 전주 정읍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마방(馬房)도 크게 운영했다.
1896년 어느 날, 초라한 행색의 17세 소년이 이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는 경남 남해 태생으로 6세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딱한 사연을 들은 조덕삼은 그를 머슴으로 들이고 마부 일을 맡겼다. 오갈 데 없는 ‘고아 머슴’은 남다른 눈썰미로 일을 잘 해냈다.
'머슴 목사' 이자익(왼쪽), '주인 장로' 조덕삼.그머슴의 이름은 이자익(李自益·1879~1958). 그는 주인집 아들이 훈장에게 한문 배우는 소리를 어깨너머로 듣고 천자문을 깨쳤다. 공부방 곁을 지나던 머슴이 천자문을 줄줄 외우는 걸 본 조덕삼은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아들과 함께 글을 배우도록 했다.
그 무렵 루이스 테이트(Lewis B Tate) 선교사가 이 집 마방에 말을 맡기고 묵어가게 됐다. 조덕삼은 가난한 조선 땅에 자청해서 선교사로 들어온 테이트의 헌신적인 신앙에 감명받아 사랑채를 예배 장소로 제공했다. 곧이어 아내, 머슴 이자익, 같은 동네 사람들과 예배에 동참했다. 얼마 뒤에는 이자익과 동시에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됐다.
1908년에는 돈과 땅을 내놓아 교회당을 지었다. 교세가 커지자 장로를 선출해야 했다. 자연스레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천거됐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투표였다. 조덕삼은 교회 건립의 중추이자 대지주이고, 나이도 열두 살이나 많았다. 이자익은 먼 경상도 출신의 미천한 마부였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이자익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당시 서울에서는 백정과 갖바치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들이 별도 교회를 설립해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조덕삼이 일어나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수가 터졌다.
이후 조덕삼은 ‘머슴 장로’를 지극하게 섬겼고 그의 설교를 들을 때에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2년 뒤 장로가 되자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며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다. 이자익이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금산교회 목사로 청빙해 깍듯이 모셨다.
그는 이자익 목사를 도와 유광학교(동광학교의 전신)를 세우고 일제의 압박에 맞서며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 태극기도 만들었다. 3·1운동 때 그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그해 세상을 떠났다.
'ㄱ'자형 한옥의 김제 금산교회.이자익 목사는 조덕삼 장로의 임종 머리에서 목 놓아 울었다. 이후 평생 은인의 유지를 받들며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가난한 교회만 찾아다니면서 농촌 목회에 전념했다. 그 결과 한국 장로교 역사상 유일하게 총회장에 세 차례나 뽑힐 정도로 존경받았다. 광복 후 장관 제의까지 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목회자로 종신했다. 1954년 대전신학대를 설립한 주역도 그다.
이들의 아름다운 인연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 이자익 목사의 아들인 이성환 장로, 손자인 이규환 장로(전 옌볜과학기술대 교수)와 이규석 목사, 조덕삼 장로의 아들 조영호 장로와 손자 조세형 장로(4선 국회의원), 증손자 조성훈 장로가 4대째 연을 맺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ㄱ’자 교회는 소중한 문화재가 됐다.
새 국회 '진정한 머슴' 되새기길
금산교회 한옥 예배당에는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이 드나들던 쪽문이 있다. 목회자들은 이 문으로 몸을 숙이고 드나들며 겸손을 새겼다. 오는 30일은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함께 세례를 받은 기념일이다. 이날 여의도에서는 새 국회가 개원한다.
선거 운동 때 허리를 굽히며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고 외치던 국회의원들은 임기를 시작하기 전에 ‘진정한 머슴’의 의미를 가슴 깊이 새겨보기 바란다. 신분과 나이, 지역 차이를 뛰어넘은 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그 열쇠가 들어 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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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 자리 거부한 '3선 총회장'
이곳은 원래 ‘김제 갑부’ 조덕삼(趙德三·1867~1919)의 과수원 땅이었다. 조덕삼의 할아버지는 평양에서 중국과의 무역으로 부를 쌓았고, 아버지는 김제에서 금광업으로 큰 부자가 됐다. 그 덕분에 김제평야의 비옥한 땅을 많이 가졌다. 조덕삼의 집은 김제와 전주 정읍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여서 마방(馬房)도 크게 운영했다.
1896년 어느 날, 초라한 행색의 17세 소년이 이 집 대문을 두드렸다. 그는 경남 남해 태생으로 6세 때 부모를 여의고 친척집을 전전하다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딱한 사연을 들은 조덕삼은 그를 머슴으로 들이고 마부 일을 맡겼다. 오갈 데 없는 ‘고아 머슴’은 남다른 눈썰미로 일을 잘 해냈다.

그 무렵 루이스 테이트(Lewis B Tate) 선교사가 이 집 마방에 말을 맡기고 묵어가게 됐다. 조덕삼은 가난한 조선 땅에 자청해서 선교사로 들어온 테이트의 헌신적인 신앙에 감명받아 사랑채를 예배 장소로 제공했다. 곧이어 아내, 머슴 이자익, 같은 동네 사람들과 예배에 동참했다. 얼마 뒤에는 이자익과 동시에 세례를 받고 집사가 됐다.
1908년에는 돈과 땅을 내놓아 교회당을 지었다. 교세가 커지자 장로를 선출해야 했다. 자연스레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천거됐다.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투표였다. 조덕삼은 교회 건립의 중추이자 대지주이고, 나이도 열두 살이나 많았다. 이자익은 먼 경상도 출신의 미천한 마부였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고 보니 이자익이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당시 서울에서는 백정과 갖바치가 장로로 선출되자 양반들이 별도 교회를 설립해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조덕삼이 일어나 “우리 금산교회 교인들은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저는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수가 터졌다.
이후 조덕삼은 ‘머슴 장로’를 지극하게 섬겼고 그의 설교를 들을 때에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그는 2년 뒤 장로가 되자 이자익을 평양신학교로 보내며 학비와 생활비 일체를 지원했다. 이자익이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금산교회 목사로 청빙해 깍듯이 모셨다.
그는 이자익 목사를 도와 유광학교(동광학교의 전신)를 세우고 일제의 압박에 맞서며 한글과 우리 역사를 가르쳤다. 태극기도 만들었다. 3·1운동 때 그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아름다운 인연은 대를 이어 전해졌다. 이자익 목사의 아들인 이성환 장로, 손자인 이규환 장로(전 옌볜과학기술대 교수)와 이규석 목사, 조덕삼 장로의 아들 조영호 장로와 손자 조세형 장로(4선 국회의원), 증손자 조성훈 장로가 4대째 연을 맺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ㄱ’자 교회는 소중한 문화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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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교회 한옥 예배당에는 강단 뒤쪽으로 목사들이 드나들던 쪽문이 있다. 목회자들은 이 문으로 몸을 숙이고 드나들며 겸손을 새겼다. 오는 30일은 조덕삼과 이자익 두 사람이 함께 세례를 받은 기념일이다. 이날 여의도에서는 새 국회가 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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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북한 최고자들의 '신변 이상', '사망' 등 설(設)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4년 당시 잠행을 뚫고 등장한 사진. /노동신문.뉴시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뒤 중태에 빠졌다는 CNN 보도를 시작으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김일성 북한 전 국가주석 시대(1948~1994)와 김일성 전 국방위원장 집권(1994~2011) 당시에도 비슷한 소문은 흘러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북한이라는 점에서 여러 추측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것도 의혹의 당사자였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더팩트>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은 언제 제기됐고, 어떻게 무마됐는지 등을 3회에 걸쳐 비교·분석했다. <편집자 주>
'일정 기간 잠행→신변 이상 의혹→공식 석상 등장'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CNN '중태보도'처럼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수차례 '건강 이상설'이 나왔다. 다만, 잘못된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왜 북한 최고자들의 '신변 이상', '사망' 등 설(設)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우선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의 체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김 씨 3대가 '일정 기간 잠행→신변 이상 의혹→공식 석상 등장' 형태를 보여왔다. 또 ‘심장질환’이라는 가족력까지 더해져 신변 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근 집중 제기되는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에 대해 "인포데믹(가짜뉴스 유행병)"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동안 김정은·김정일·김일성 건강에 대한 잘못된 보도가 많았다"며 "확실한 정보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실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8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위원장이 도보다리 산책 후 평화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모습. /한국공동사진기자단
◆ '심장질환' 가족력…젊지만 고도비만이란 점도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모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김 위원장도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실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건강 이상설'이 돌아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1994년 김 주석 사망 당시 북한 당국은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평소 동맥경화 등 지병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수척해진 모습에 일각에선 췌장암에 걸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병을 앓다 3년뒤 결국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두 정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36세로 추정)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2012년 취임직후 주기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작은 키 170㎝에 몸무게 130kg의 '고도비만'과 평소 흡연과 음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이 때문에 이번 '건강 이상설'에서 당뇨병 내지는 내당능장애(생체의 포도당 처리 능력이 비정상으로 저하된 증상)가 심장질환 악화를 불렀을 거라는 추측이 제기된 것이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최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국무위원장이 최근 심혈관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애나 필드 베이징 지국장이 발간한 김 위원장에 대한 저서 '위대한 계승자'에서도 "북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김정은의 건강"이라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병'과 '고도 비만'이라고 적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집권 초기에는 잠행설이 돌때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핵개발을 위해 중국·러시아에 다녀왔다'는 등의 소문도 돌기도 했다. 북한 조선중앙TV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6주기인당시 북한 평양의 만수대 언덕을 찾은 북한 군인 및 각 계층 군중들의 모습. /조선중앙TV 캡쳐
◆잠행 길어질 때마다 '건강 이상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집권 초기에는 잠행설이 돌때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핵개발을 위해 중국·러시아에 다녀왔다'는 등의 소문도 돌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을 겪고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마다 '사망설',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국방위원장은 1994년 7월 집권 후 처음으로 잠적했다. 기간은 87일로 최장기 잠행기간을 기록했다. 당시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한 직후라 '권력투쟁', '건강 이상설','쿠데타' 등의 이야기도 나왔지만, 북한은 차후 김 전 주석의 '100일 애도 기간'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한해에는 3차례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2월·9월·10월에 각각 40일 이상씩 사라졌다. 당시 핵 개발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는 설이 나왔다. 또, 부인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 유방암과 관련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08년 8월에는 실제로 뇌졸중으로 80일 동안 자취를 감췄다. 처음엔 이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건국 60주년 기념 열병식(10월 10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올해 1월27일~2월15일(20일), 3월23일~4월9일(18일)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2014년(41일)과 2019년(27일)에도 긴 공백이 있었다. 당시 모두 언론의 관심을 받았는바 있다. 지난 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잠행을 보도한 언론보도. /네이버 캡쳐
김 위원장도 현재 보름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부친 김 국방위원장처럼 20일 넘게 공식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27일~2월15일(20일), 3월23일~4월9일(18일)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2014년(41일)과 2019년(27일)에도 긴 공백이 있었다. 당시 모두 언론의 관심을 받았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지난 해엔 북미 실무협상을 두고 셈법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2014년 40여일간 잠적 당시에는 발목에 생긴 낭종 제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목 수술이 알려지기 전엔 국내에서 '쿠데타설', '김정은 위원장 실각설' 등이 떠돌았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위원회 부의장은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위중설·사망설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악의성이 있는 보도 같다"며 "남북관계가 잘 진행되는 것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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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술 뒤 중태에 빠졌다는 CNN 보도를 시작으로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김일성 북한 전 국가주석 시대(1948~1994)와 김일성 전 국방위원장 집권(1994~2011) 당시에도 비슷한 소문은 흘러나왔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 북한이라는 점에서 여러 추측 보도가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결국, 진실을 밝히는 것도 의혹의 당사자였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더팩트>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시대의 '건강 이상설'과 '사망설'은 언제 제기됐고, 어떻게 무마됐는지 등을 3회에 걸쳐 비교·분석했다. <편집자 주>
'일정 기간 잠행→신변 이상 의혹→공식 석상 등장'
[더팩트ㅣ통일부=박재우 기자]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CNN '중태보도'처럼 김일성·김정일 시대에도 수차례 '건강 이상설'이 나왔다. 다만, 잘못된 보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면 왜 북한 최고자들의 '신변 이상', '사망' 등 설(設)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우선 극도로 폐쇄적인 북한의 체제 특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을 비롯한 김 씨 3대가 '일정 기간 잠행→신변 이상 의혹→공식 석상 등장' 형태를 보여왔다. 또 ‘심장질환’이라는 가족력까지 더해져 신변 이상설이 끊이지 않는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근 집중 제기되는 김 위원장의 '신변 이상설'에 대해 "인포데믹(가짜뉴스 유행병)"이라고 평가했다.
아울러,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도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그동안 김정은·김정일·김일성 건강에 대한 잘못된 보도가 많았다"며 "확실한 정보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심장질환' 가족력…젊지만 고도비만이란 점도
김일성 전 주석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모두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김 위원장도 가족력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실제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가쁜 숨을 몰아 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건강 이상설'이 돌아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1994년 김 주석 사망 당시 북한 당국은 심근경색에 의한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평소 동맥경화 등 지병이 있었다고 알려졌다. 김 국방위원장은 200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수척해진 모습에 일각에선 췌장암에 걸렸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병을 앓다 3년뒤 결국 심근경색과 심장쇼크 합병으로 사망했다.
또한, 두 정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36세로 추정)지만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은 2012년 취임직후 주기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작은 키 170㎝에 몸무게 130kg의 '고도비만'과 평소 흡연과 음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이 때문에 이번 '건강 이상설'에서 당뇨병 내지는 내당능장애(생체의 포도당 처리 능력이 비정상으로 저하된 증상)가 심장질환 악화를 불렀을 거라는 추측이 제기된 것이다. 북한전문매체 데일리NK는 최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 국무위원장이 최근 심혈관 수술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워싱턴포스트 애나 필드 베이징 지국장이 발간한 김 위원장에 대한 저서 '위대한 계승자'에서도 "북한의 최대 리스크 요인은 김정은의 건강"이라며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장병'과 '고도 비만'이라고 적었다.

◆잠행 길어질 때마다 '건강 이상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집권 초기에는 잠행설이 돌때마다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했다', '핵개발을 위해 중국·러시아에 다녀왔다'는 등의 소문도 돌기도 했다. 하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을 겪고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는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마다 '사망설', '건강 이상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 국방위원장은 1994년 7월 집권 후 처음으로 잠적했다. 기간은 87일로 최장기 잠행기간을 기록했다. 당시 김일성 전 주석이 사망한 직후라 '권력투쟁', '건강 이상설','쿠데타' 등의 이야기도 나왔지만, 북한은 차후 김 전 주석의 '100일 애도 기간'을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3년 한해에는 3차례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는데, 2월·9월·10월에 각각 40일 이상씩 사라졌다. 당시 핵 개발을 논의하기 위해 중국에 갔다는 설이 나왔다. 또, 부인이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생모인 고영희 유방암과 관련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08년 8월에는 실제로 뇌졸중으로 80일 동안 자취를 감췄다. 처음엔 이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의 건국 60주년 기념 열병식(10월 10일)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건강 이상설'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도 현재 보름째 두문불출하고 있다. 부친 김 국방위원장처럼 20일 넘게 공식매체에 등장하지 않은 적도 여러 번인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27일~2월15일(20일), 3월23일~4월9일(18일)에도 나타나지 않았고, 2014년(41일)과 2019년(27일)에도 긴 공백이 있었다. 당시 모두 언론의 관심을 받았는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지난 해엔 북미 실무협상을 두고 셈법에 들어갔다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2014년 40여일간 잠적 당시에는 발목에 생긴 낭종 제거 수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목 수술이 알려지기 전엔 국내에서 '쿠데타설', '김정은 위원장 실각설' 등이 떠돌았다.
한편,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위원회 부의장은 28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위중설·사망설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악의성이 있는 보도 같다"며 "남북관계가 잘 진행되는 것이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jaewoopark@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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