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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삼바 사건과 무시된 회계 전문가의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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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인훈윤
작성일19-02-16 10:13 조회4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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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처리
전 금융당국은 적정하다고 인정
현 금융당국은 분식회계로 단죄
회계학계·공인회계사회는 반발
다수 회계 전문가들의 견해를
정치적 이유로 뒤집지 말아야
최종학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수백 명의 과학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으로 저항함에 따라 전 정권에서 임명된 신상철 KAIST 총장을 쫓아내려던 정부의 계획이 좌절된 듯하다. 이와 유사하게 정부에 대해 학자들이 반발하는 일은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발생 중이다. 일부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SBL·삼바) 분식회계’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8년 동안 회계학계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필자를 비롯한 여러 저명한 학자들이 ‘SBL의 회계처리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의견서를 발표했으며, 사석에서도 이와 관련한 견해를 쏟아냈다. 평상시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던 회계법인 업계도 이 사건에 대해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초에 이 사건을 문제 삼은 참여연대나 몇몇 정치인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지분비율이 높은 제일모직에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을 조정하려고 제일모직의 자회사 SBL의 가치를 부풀리는 분식회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합병 발표 전 문제가 된 회계처리가 이루어졌어야 할 텐데, 실제로는 발표 6개월 뒤에 벌어진 일이다. 기업의 본질가치와도 상관이 없어, 증가한 기업가치를 언제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차이만 있는 사건이다. 이 회계처리가 왜 잘못인지에 관한 금융당국의 주장이 사건이 진행되던 1년 동안 수차례 변했다는 점을 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최종적으로 발표된 분식회계의 이유도 참여연대의 주장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전문용어로 표현하면 ‘지배력의 존재 여부 판단’과 관련된다. 다수의 학자나 회계 업계에서는 개별 회계처리 방법의 적정성 여부를 떠나 국제회계기준(IFRS)의 접근방법에 비추어봐도 현 금융당국의 주장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IFRS는 ‘원칙중심 회계기준’이라고 불리며, IFRS 도입 이전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회계기준이자 현재 미국과 일본에서 사용 중인 ‘규정중심 회계기준’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모든 상황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을 사전에 마련할 수 없으므로, 이 사건처럼 세부적인 규정이 없는 경우라면 의사결정의 준거점이 되는 큰 틀만 제공하는 것이 IFRS다. 전문가가 그 틀에 따라 적정한 회계처리 방법이 무엇인지 판단하므로, IFRS 상에서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서도 판단이 다르다면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따라서 전문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주석을 통해 설명해서 이해관계자들이 그 이유를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전문가의 판단을 존중하자는 것인데,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나서서 전문가의 판단이 틀렸다고 하는 기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SBL의 회계처리가 논란을 불러일으킨 건 사실이다. 그런데 SBL은 이를 숨긴 것이 아니라, 회계법인들과 수차례 논의를 거쳐 이 방법이 적정하다고 판단을 했고 공시도 했다. SBL의 공시내용이 충분한가에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다수의 회계법인 전문가들이 당시 그 회계처리 방법이 옳다고 판단했었고, 사후적이지만 SBL의 상장 당시 재무제표에 대한 감리를 수행한 공인회계사회나 전 정권의 금융당국, 그리고 현재 다수의 학자들 역시 그 회계처리 방법이 옳다고 판단했다. 이것을 보면 그 방법이 터무니없다고 보이지 않는다.

대다수의 학자들이나 회계법인들은 오히려 현재 금융당국이 주장하는 회계처리 방법이 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현 금융당국의 주장이 맞다면 SBL 뿐만 아니라 많은 국내 기업들도 이제까지 분식회계를 해온 것이며, SBL의 합작 파트너인 미국 바이오젠은 ‘경영권은 SBL이 보유한다’는 허위공시를 했던 셈이다. 일부 학자들은 “국제회계기준위원회에 이 회계처리 방법이 옳은지 문의하기만 해도 정답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공인회계사회와 한국회계학회가 공동으로 학회를 개최하였으며, 앞으로도 계속 관련 학회를 열 계획이다. 얼마 전 열렸던 학회에서 참석자들은 “감독당국이 회계기준을 객관적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학회에서 발표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회계사들이 감독당국을 얼마나 불신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감독당국이 이렇게 특정 의도를 가지고 회계기준을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IFRS와 이혼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필자도 이 견해에 일부 공감한다. 극단적인 대안이지만 ‘미국회계기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 회계기준은 훨씬 복잡하지만 법조문처럼 자세한 회계처리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해석을 둘러싼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작아 정치권이 SBL 사건과 같은 일을 벌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 사건이 종료되면, SBL 사건과 비슷한 의도로 시작된 듯한 다른 기업을 타깃으로 한 사건들이 금융당국에 의해 대기 중이라는 소식은 우리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전문적인 일이라면 정치인이 아니라 전문가의 의견이 존중받는 사회가 그립다.

최종학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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